이 글은 2022년 11월 17일에 작성되었으며
2022년 10월 14일의 경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해당 내용이 작성 시점에는 다를 수 있습니다.
23-04-12 화중종주 링크 추가
작년에 무박 화중종주를 하고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힘든 기억은 결국 미화되어버렸습니다.
어떤 이유로 미화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미화되었고 핫앤쿡 도시락고 에너지젤을 다시 주문하고 짐을 꾸렸습니다.
아래 사진처럼 작년보다 훨씬 가볍게 준비했습니다.
등산 바람막이, 무릎보호대, 발열도시락 두개와 에너지젤 10개, 자유시간과 소세지, 장갑을 챙겼고 이를 담을 작은 배낭을 준비했습니다.
작년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던 스틱은 이번에 빼고 갔습니다.
준비물을 꾸리다보니 작년의 힘들었던 기억들이 떠올라서 너무 두려웠습니다. 혼자 라이트에 의지해서 오르던 어두운 새벽의 산, 헥헥 대며 힘겹게 발을 디디던 천왕봉 앞의 미친 경사, 아픈 다리로 막차 타겠다고 뛰어내려오던 하산길과 내려오자마자 터져버린 눈물. 작년에는 무식해서 용감하기라도 했는데 한번 해본 경험은 오히려 두려움이 되어있었습니다.
오른쪽 사진은 종주코스입니다. 안내산악회에서 주는 정보인 것 같은데, 식수보급과 15시간 기준 산행시간이 나와있습니다. 굉장히 도움이 많이되었습니다. 저도 검색해서 다운받아놓았던 건데 출처를 빠르게 찾아서 적어두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두려움은 가지고 힘들면 중산리로 내려오자고 생각하고 기차역으로 향했습니다. 작년엔 서대전역에서 출발했는데 대전 생활을 정리한 지금은 수원에서 내려갑니다. 작년엔 서대전역 23:31 기차로 01:52 구례구역에 도착하는 기차가 있었는데 올해 8월부터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좀 더 일찍, 수원 19:49 기차로 구례구역 23:43에 도착하는 기차를 탑니다.
구례구역에서 화엄사까지는 택시를 타고 갑니다. 택시는 기차 시간에 맞춰 앞에 대기해 있고 기사님들이 화엄사, 성삼재 나눠서 태워줍니다. 6명의 등산객이 내렸고 3명은 일행으로 따로 타고 남은 세명이 택시를 타고 화엄사로 갑니다. 인당 만원씩 받으시고 화엄사로 갑니다!
화엄사에 도착해서 삼각김밥과 김밥 한 줄 먹어주고 간단하게 몸을 풀고 등산을 시작합니다.
화엄사에서 올라보신 분이라면 모두 공감하실 내용인데요, 화엄사 (240m) -> 코재(1,194m), 무넹기(1257m)까지가 엄청 힘듭니다. 정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확 와닿는 곳인데요. 2시간동안 미친 경사로 1000m를 올려버립니다. 어느정도 감안하고 있던 곳이었지만 확실히 여기는 진짜 빡세다고 다시 느꼈습니다. 작년보다는 확실히 느리게 올라온 것 같은데 그만큼 몸이 가볍고 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고단 고개에서는 입산 시간 제한이 있습니다. 따로 지키는 사람은 없으나 10월 기준으로 03시부터 통과가 가능해서 15분동안 앉아 쉬면서 스트레칭을 해줍니다.
(아이폰 렌즈가 깨져서 빛 번짐이 난리가 났네요ㅠㅠ)
임걸령 샘은 지리산 보급 중 하나입니다. 영상처럼 위 표지판을 따라 5m를 걸어가면 샘이 있고 물을 채울 수 있습니다. 지리산은 다른 산에 비해 물보급이 편하다고 합니다. 중간중간 보급을 미리 알아두시면 산행할 때 편하실거에요.
경상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의 경계에 위치한 삼도봉입니다. 갈 길은 한참 남았지만 휴식을 취하며 조금씩 걸어갑니다.
여명, 일출을 보는 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산을 오르다보면 동쪽 하늘이 붉어지는 걸 보게 되는데 여전히 산 중턱이기 때문에 왼쪽 사진처럼 나무에 잔뜩 가려서 보게 됩니다. 아쉬운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하다보면 한번씩 나타나는 넓은 하늘과 광경에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게 됩니다. 물론 갈 길이 머니 오랫동안 볼 수는 없지요. 종주 중에 제대로 여명, 일출을 보려면 굉장히 서둘러야할 것 같습니다. 능선을 바라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곳에 올라와야할 뿐 아니라 대원사까지 갈 길이 많이 남았기 때문이죠.
이때쯤이었을까요.. 왼쪽 무릎이 조금씩 아파왔습니다. 아팠다기보다는 불편했다 정도? 왼쪽 무릎보다는 윗쪽 허벅지인 것 같아서, 그리고 이정도면 심하지 않으니까 딱 이만큼만 아파라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때 내려와야했습니다....
걷다 보면 연하천 대피소가 나옵니다. 22년 10월 14일 기준으로 연하천 대피소는 공사중이었습니다. 대피소 업무는 당연히 없고 아마 매점도 없었을 겁니다. (매점 확인은 따로 안했어요..) 그래도 물 보급하는 데 문제는 없으니 물은 받으실 수 있습니다. 물 받는 곳은 첫번째 사진에서 건물을 향해 가다보면 왼쪽에 샘물이 있습니다.
연하천 대피소 폐쇄 기간 : 2022/09/01 ~ 2022/11/30
가다보면 위 영상처럼 능선이 쫙 펼쳐지는 풍경을 보게 됩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 맛에 산을 오르는 게 아닌가 싶네요. 하늘에 구름부터 땅에 능선까지 너무 아름다운 순간이었습니다.
벽소령 대피소. 돌이켜보니 여기부터도 다리를 절면서 도착했던 것 같네요. 연하천 이후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해서 밥을 먹습니다! 밥은 지난번에도 챙겼던 핫앤쿡 라면애밥 입니다. 작년에는 세개 챙겨가서 두개만 먹고 내려왔어서 이번엔 두개만 챙겼는데, 하나만 먹고 내려왔네요.
핫앤쿡 여기서 나오는 게 라면애밥, 사골떡국, 볶음밥 등등 여러가지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라면 사골떡국처럼 국물이 많은 걸 추천드립니다. 작년에 볶음밥을 먹었었는데 물을 많이 부었는지 볶음밥을 말아먹는 느낌이 나서 영 별로였습니다. 라면애밥, 사골떡국 추천드리고 사골떡국 진짜 강추... 집에와서 해먹어봤는데 사먹는 떡국만큼 맛있었습니다!!! 사골떡국 진짜 강추
혼자 다니지만 사진은 찍어야됩니다. 이렇게 훤히 능선이 보이는 곳에는 보통 다른 등산객분들이 쉬고 계십니다. 풍경 한 샷 찍어주고 사진 한장씩 부탁드리면 모든분들이 적극적으로 사진을 찍어주십니다! 산에 오는 사람들은 다 착한 사람들..
이제 슬슬 지치기 시작합니다. 물론 작년보다는 훨씬 몸도 짐도 가볍고 발도 안 아픕니다. 다만, 왼쪽 무릎이 계속 걸음을 붙잡습니다.. 세석대피소에도 물 보급이 있지만 굳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바로 스윽 지나갑니다. 사진마다 시간을 적어놓았으니 종주하시는 분들은 시간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연하선경과 장터목대피소입니다. 작년 화중종주를 포스팅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 연하선경입니다. 지리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기도 하죠! 작년에는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저 길을 또 언제 걸어가나 싶었는데 작년보다 시간적으로 체력적으로 여유로운 지금은 너무 아름답게 보이네요. 연하선경에 보이는 저 가운데 길을 따라 가면 장터목대피소가 나타납니다. 장터목 대피소도 마찬가지로 물 보급이 있는데 화엄사에서 시작해서 여기까지 오셨다면 조금 내려가는 그 물보급도 정말 길고 귀찮게 느껴집니다... 물을 또 채우고 천왕봉으로 올라갑니다!
정말 고됩니다..! 지쳐요 이제. 또 무릎이 너무 아파요. 미친 경사에 옆에 있는 줄을 붙잡고 팔 힘으로 올라갑니다. 장터목대피소면 정말 다 온 거긴 한데 쉽지만은 않네요..
천왕봉에 도착했습니다.. 무릎이 너무 점점 아파옵니다. 딱 이정도만 아파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올라왔습니다. 진주고등학교였나 1학년 학생들도 단체로 지리산 천왕봉으로 올라왔더라고요. 고등학생들 다들 대단해... 화엄사에서 시작한 지 13시간만에 천왕봉 도착했습니다!! 경치 구경하고 사진도 남기고 내려갑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사진을 제대로 못 찍어서 아쉬웠던 천왕봉입니다.
드디어 대원사로 내려갑니다. 작년에 못했던 한, 오늘에서야 드디어 풀어봅니다. 오늘도 중산리로 내려가면 내년에 다시 올 것 같기에, 14시면 버스 막차 진주가는 버스 막차 18 50까지는 여유가 있기에 대원사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저는 대원사로 가면 안됐습니다... 이때는 몰랐습니다. 내려가는 게 무릎에 훨씬 더 무리가 간다는 것을...
오른발로 내려갈 때, 왼쪽 무릎이 굽어지면서 미친듯한 통증이 찾아옵니다. 최대한 왼무릎을 굽히지 않기 위해 오른쪽 발을 멀리 뻗으며 이상한 자세로 걸어내려오기도, 왼쪽 다리로만 내려가기도 해보지만 통증은 더욱 심해져만 갑니다.. 오른쪽 무릎이 조금 아파도 좋으니, 3일간 무릎을 못 써도 좋으니 내려갈 때까지만 버텨달라고 기도하며 내려가보지만 앞에 두가지만 들어주신 것 같습니다. 오른쪽 무릎에도 통증이 오고 다리를 절며 내려갑니다. 한번은 가만히 서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통스러워 그냥 소리지르며 주저앉아버립니다...
이제 포기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습니다. 그냥 내려가야됩니다..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어떻게든 내려가는 것입니다.. 수십번 주저앉고 수백번 이겨내라고 외치면서 소리지르며 치밭목대피소에 도착합니다.
100분 정도로 잡았던 치밭목대피소까지의 하산길은 130분이 걸렸습니다. 그래도 버스타는 데는 문제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까지는. 작년에 했던 것처럼 그 악바리로 이겨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거든요. 치밭목 대피소에도 물 보급이 있습니다. 물 보급은 대피소에서 조금 떨어져있습니다. 13시간 30분을 걸은, 장경인대염이 양쪽 다 와버린 무릎으로는 너무나 멀게 느껴집니다. 처음 가는 길이기에 얼마나 걸어가야하는지 모르고 물 받으러 갔다가 후회했습니다. 물을 받아오고 쉴 틈 없이 다시 내려가야합니다.
금요일, 평일이라 종주하시는 분들이 많지 않은지 천왕봉부터 치밭목대피소까지 한분도 못 마주쳤는데, 치밭목에서 내려가는 길에 종주하시는 아저씨 두분을 만났습니다. 버스 막차 타러 가야된다고 먼저 가다가 이 무릎으로 가지 못하고 따라잡혔습니다. 치밭목부터 대원사까지 가는 길은 나무계단이 매우 많은데, 오히려 나무 계단이 무릎통증이 더 심합니다..
아저씨두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내려가다가, 이 속도로는 버스 막차 절대 못 탄다고 화엄사까지 택시를 타고 같이 이동해서 아저씨들 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자고 제안을 해주십니다. 김포, 서울로 가시는데 부천쯤에서 내려주겠다는 제안이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한 제안이었고 그렇게 가기로 했습니다. 대원사에서 화엄사 택시비는 10만원인데 내가 4만원 내야지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저씨 두분께서는 스틱도 빌려주시고 말동무도 해주시며 같이 가주십니다. 바위길은 그나마 속도를 맞춰서 갈 수 있는데 나무계단은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가 지고 사진같은 건 찍을 생각도 못하고 끝까지 갑니다. 내려가면서 대원사 말고 유평마을로 택시를 부릅니다. (중간에 인터넷 안 터지는 구간도 있어요)
그렇게 안 끝날 것 같던 하산길, 이번에도 악바리와 독기로 소리지르며 내려옵니다..
유평마을 도착.. 유평마을부터 대원사까지는 차도로 1.5km를 가면 됩니다!
내려오면서 제 무릎이 안 좋은 건 알지만 너무 대원사까지 걸어가고 싶은데 괜찮으신지 여쭤보았으나, 그 다리로 뭘 더 가냐고 독기는 알겠지만 산악길도 아니고 차도 1.5km인데 큰 의미 없다고 유평마을에서 택시를 타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요 찻길 1.5km니까 화대종주 끝낸 걸로 합시다..!
화엄사(00:20) → 유평마을(18:50), 42.7km / 18h30m
치밭목 대피소에서 만난 귀인들께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다, 스틱도 빌려주시고 말동무도 해주셨다. 밤에 위험하니 라이트 켜주시며 같이 걸어주셨다. 심지어 택시비도 안 받으시고, 저녁까지 사주시고 집 근처 톨게이트 비봉IC에서 내려주셨다. 나 뿐만 아니라 본인들에게도 서로가 지리산의 선물이라고, 이번에 도움 받은 것처럼 다음에는 선의를 베풀으라고 가르쳐주셨다. 그런 순간이 나에게 오기를 바라본다.
참 고생 많았다. 다 끝나고 여길 다시 왜 갔을까 생각해보니 악바리로 걸어내려오던 작년의 그 모습이 그리워서, 그리고 못했던 화대종주를 다시 끝내고 싶었서였던 것 같다. 사서 고생하며 힘듦의 역치를 높이며 살아간다. 이번 고생에서는 양쪽 무릎, 발 멀쩡한 곳이 없기에 다쳐서 오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그 다리로 내려왔기에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리고 잘 마쳐서 너무 후련하다.
객기와 무모함으로 시작해서 독기와 악바리로 끝낸 무박화대종주 끝, 다시는 안 간다.
8만보 걷고 잠도 못 자고 x나멋있어...
무릎은 한달이 지난 아직도 달리기 하면 아프답니다~
장경인대염인 것 같은데 일단 오랫동안 쉬어야겠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오려고 찾아두었던 방법을 아래에 공유합니다.
첫번째로 대원사에 18:50에만 도착하면 진주행 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진주에서 하루 자고 다음날 수원으로 올라오는 방법이 있습니다.
두번째로 더 늦게 도착한다면 택시를 타고 원지터미널까지 간 후에 원지터미널에서 서울로 넘어가려했습니다. 21:30 버스를 타면 서울고속터미널에 01:32에 도착합니다. 수원 가는 빨간 버스는 새벽 2시까지 운행하는 경우가 많아서 빨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거나 놓치면 서울에서 자고 내려갈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과분한 도움을 받아서 집에 잘 도착했습니다 :)
가시는 분들 안전산행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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